믿음과 소망의글

[스크랩]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야벳스 2012. 9. 10. 17:05


전기문은 실재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 글입니다. 전기문은 실재했던 인물을 대상으로 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소설이나 꾸며진 이야기와 구별됩니다. 소설이나 꾸며진 이야기에서는 등장인물의 전부 또는 일부가 실존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기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재했던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전기는 자신을 이해하는 거울이 됩니다. 전기 읽기를 통해 평생 자기 일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전환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의 인격과 신앙의 성숙을 위한 목표와 방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한 인물의 전기는 한 시대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인물의 전기를 통해 한 시대의 역사를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알게 됩니다.

신앙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 신앙전기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이런 전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보게 됩니다. 전기를 읽다 보면 의미 있는 인생이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한 방편으로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 매우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분에게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분의 삶 속에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를 아주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앙 전기를 읽는 것은 또한 자신의 신앙 성장에 무엇보다 유익한 성장의 한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신앙 위인전기 속에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풍부한 신앙 유산이 보화처럼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최소한 1달에 1권 정도의 신앙 서적은 읽었으면 합니다. 성경은 물론이지만 유익한 신앙 서적을 읽지 않고 신앙이 자라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시대 신앙 선배들의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연대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는 행위가 아닙니다. 신앙의 선배 한 사람 한 사람의 전기는 곧 그들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전기 읽기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신앙 전기를 남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탁월한 모범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선배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그러한 성숙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오늘 나에게 어떤 지침을 주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전기를 읽어가는 동안 독자는 그 인물의 사상과 삶을 통해 자기의 인생 진로에 대한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만나거나 혹은 때로 도전과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신앙 위인들의 전기 읽기를 통하여 우리가 도달해야 할 신앙 목표만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장애물이 무엇이며 그 장애물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또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방법에 대해서도 중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읽으면서 흥미 있는 사항 하나는 그 인물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인물의 당대가 아닌 후대에 의해서 내려진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조선 중종 때 개혁의 선봉장에 섰다 37세의 나이로 임금의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던 조광조 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중종 임금에 의하여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은 이유는 정치적 야심 때문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권력에 집착한 권력 탐욕자라는 이유에서 그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학자들은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이상적 국가를 꿈꾸며, 국가의 안위를 진정으로 이루기를 원했던 조선 최고의 이상적 정치가였다는 것입니다. 조광조 선생이라는 이름 석 자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다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역적이요, 조선을 망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조광조를 몰아내고 당시에는 최고의 충신으로, 당대 조선 최고의 명망 있는 정치가로 여겨졌던 남곤, 심정, 김전, 고형산이라는 이름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역사학자들 외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 인물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흘러 내려오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이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당시에는 유명하고 그들이 최고의 인생으로 여겨졌는지는 모르지만, 후대에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사람들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반면, 당대에선 주목 받지 못하고, 삼류인생처럼 여겨졌으나 후대에 칭송받고 인정받는 인물들이 즐비합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남이 나를 어떻게 보아주느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때나,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누구나 다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평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계시느냐, 또 나를 통해서 어떠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 일을 위하여 나를 얼마나 중요하다고 인정하시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하나님 보시기에”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겨도 하나님은 틀리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틀리더라도 하나님은 옳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늘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법률적 문제가 있을 때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변호사들에게 문제를 의뢰하면 변호사들은 법전을 들춥니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범위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매일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느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로지‘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거울에 일상의 삶을 비취고“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자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의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에 민감한 삶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고통을 받고 돌아가셨으며 사흘 만에 일어나셨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그 주님 앞에 모두 무릎 꿇을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질문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판단합니까?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텐데 말입니다.<로마서 14장 10절>

♬ 예수님의 보혈로 ♬



출처 : 여호와는나와함께
글쓴이 : 주만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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